지명유래
이 마을에는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우물이 있다. 이 샘우물을 황새우물 또는 감천(甘泉)이라고 하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고 한다. 따라서 달 ‘감(甘)'자를 써서 감물이라 했으며, 당연히 감물이 있는 논들을 감물나리라 부르게 되었고, 감물나리 → 가물나리 → 가무나리의 어원변화에 의해 마을의 지명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밀양 박씨(密陽朴氏)와 광주 안씨(廣州 安氏)의 집성촌이다.
- 안골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안골이라 한다.
- 샘밖골샘밖골은 심밖골이라 부르고 있다. 샘이 전혀나지 않는 곳이라 샘밖의 마을이라 하는 말도 있다. 이곳에는 이종생 (李從生)의 묘가 있다.
- 횟걸마루이곳은 석회석이 많이 나던 곳으로, 석회를 굽는 가마터가 있었으며 생석회를 만드는 곳이었다.
- 윗말안촌을 부르는 말이다.
안촌은 가무나리의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 안씨의 집성촌이므로 안촌이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 매봉재산의 형상이 매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 황새우물암물·숫물 2곳의 샘우물을 말한다. 현재 암물은 있으나 숫물은 메워졌다. 이 두우물을 보고 감천(甘泉)이라고 한다. 또한 물이 검푸르다고 하여 검을 '현(玄)'자 를 써서 현천 (玄泉)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 고낙골골이 깊고 짧은 골짜기이며 이곳에서 매를 길렀었다는 말이 있다.
- 아랫말가무나리를 이르는 명칭이다. 그 외에 사당골·서낭당·수눅골·몽골·안경자리·안산·다리목 자리·뒷골·우묵골 등이 있다.
갈미마을은 감천리의 아래쪽 즉, 꼬리부분에 위치하였다 하여 감미(甘尾)마을이라고 불리던 것이 갈미로 변했다고 『하남의 역사』에 나와있다. 갈미는 칡 ‘갈(葛)'자와 쌀 미 (米)'자를 쓴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마을의 땅은 가뭄에도 경작할 수 있을 만큼 비옥하여 쌀의 질이 상품(上品)이었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라 볼 수 있다. 칡 ‘갈(葛)'자에 꼬리 ‘미(尾)'자로 쓴다는 사람도 있다. 이 마을 석니골 사이의 산에는 오래된 수호목인 영서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고사되어 없어졌다.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집성촌이다.
- 양지말햇빛이 잘드는 양지바른 마을이다.
- 응달말(건너말)양지말 건너편에 있는 마을로서 응달이 지는 마을이다.
- 넘말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 두리봉두리봉에 올라보면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바위가 있다고 한다. 광암동 너븐바위(넓은바위)와 연관된 전설이 있다고 하나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숫산 이 산에는 옛날에 망부석이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망부석이 바라보고 있는 마을의 부녀자들은 바람이 난다고 하여 마을사람들이 이 망부석을 쓰러뜨려 놓았는 데 세워 놓으면 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후 어느 해인가 이 망부석은 없 어졌다. 그 외에 사당골·서낭당·수눅골·몽골·안경자리·안산·다리목 자리·뒷골·우묵골 등이 있다. 그 외에 석니골·갈미골·사래고개·갈미고개 등이 있다.
『하남의 역사』에서는 배다리를 밝달 → 밝다 → 배달이라고 하여 신성시 되던 곳이라고 하며, 『경기도 지명유래집』에서는 여러 개의 배를 연결하여 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는 데에서 배다리라부르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금은 판교∼구리간 중부고속도로의 서하남인터체인지가 있다. 은진 송씨(恩津宋氏)의 집성촌이다.
감북동사무소가 있고 서부초등학교가 있는 마을로 길가에 마을이 있다 해서 행길께 또는 행길가라고 부른다.
피난시절 정착한 마을로서 신촌(新村)이라 하던 것을 우리말로 고쳐서 새마을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