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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살롱
문화 살롱

2024-08-27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가을만큼 음악과 잘 어울리는 계절이 있을까.

그렇다면, 독서와 음악을 함께해 보면 어떨까. 이 계절, 음악과 독서를 통해 올해의 반 이상을

힘차게 달려온 나에게 잠깐의 위로를 건네보자

가을의 시작인 9월, 라흐마니노프를 소

개합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엄청난 재능

을 가진 음악가였지만, 잇단 실패와 사

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을

받아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습니다. 하지

만,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내놓

으며, 재기에 성공하고 우울증에 벗어날

수 있었죠. 2번 교향곡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들

어진 곡이니 라흐마니노프를 우울에서

구원한 음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처럼 라흐마니노프의 우울을 치유했듯,

2번 교향곡 3악장은 우리에게 마치 마

법과도 같은 순간을 만들어 줍니다. 현

악기의 첫 선율이 울려 퍼지면, 마치 기

적이란 것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샘솟고, 3악장 내내 불안감과 외

로움을 포근하게 달래주는 선율이 이어

집니다.

세상에는 많은 비극들이 있습니다. 전

쟁, 가난, 그리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 슬픔. 우리의 마음에 불안과 외

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어둠이 존재하죠.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

을 듣고 있노라면, 그 어두운 이면 어딘

가에는 기적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

니다. 누군가는 이 음악을 들으면 종교

와 상관없이 천국을 잠시 마주하고 온

기분이라고 하니까요.

3악장을 다 듣고 나면, 저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생각납니다. 사랑이란

감정에 휘둘리다 인생의 파국으로 치닫

는 안나의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

만, 그보다는 이 소설을 해석한 박웅현

선생님의 표현이 더더욱 떠 오릅니다. 모

든 인생은 가지 않은 길이며, 아무리 오

래 살아도 처음 닥쳤을 때 자신의 감정

은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 책을 읽

고 나면 최소한 ‘마음의 길’을 잃지는 않

는다는 것. 살면서 만나게 되는 불안, 외

로움, 사랑, 질투와 같은 감정을 세밀하

게 표시한 지도처럼 정확하게 보여줄 것

이기에, 처음 마주해서 당황하며 마음

의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죠. 박

웅현 선생님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는

‘감정 지표’가 안나 카레니나였다면, 저

의 마음을 달래는 ‘감정 지표’는 라흐마

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불안과 외로움을 없애는 ‘감정 지

표’와 함께 기적의 순간을 느껴보시길 추

천합니다. 어두운 감정을 이겨내고 ‘마음

의 길’을 잃지 않은 채 삶을 힘차게 이어

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드디어 가을입니다. 재즈는 언제 들어도 좋지만 역시 가을이

가장 제격이지요. 이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재즈를 함께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애호가로도 유명하죠. 하루키는 7년간 재즈 카

페를 운영할 정도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는 재즈 음악이 최소한 한 두 곡씩은 수록될 정도

로 하루키와 재즈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

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소설 <1Q84> 서문에 나온

It’s only a paper moon인데요. 1932년 만들어진 음악으로 냇

킹 콜을 비롯해 엘라 피츠제럴드, 프랭크 시나트라 등 유명 뮤

지션들이 레코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어떤 환상

과 거짓도 사랑하는 사람이 믿어준다면 현실이 될 수 있는 세

계를 노래하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스토리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갑니다. 책을 읽으며 마

음이 설레기까지 했다고 하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정말 잘 만

든 영화 소개 영상보다도 저에게는 더 흥미로운 자극을 주었

던 것 같습니다.

6개월 이상 재즈를 소개하면서 가장 자주 인용했던 단어들

은, ‘자유’, ‘일상’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자주 접하기 힘든 재즈

를 편하게 들어보시라는 이유로 인용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바쁘게 사는 사회 속에서 정말 가지기 힘든 것들이 ‘자유’와

‘일상’이 아닐까 싶어서, 일부러라도 그런 것들을 더 누려보셨

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하루키와 재즈를 소

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키의 “‘자유로워지다’라

는 것은 설령 그것이 잠깐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도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것이다”라는 말처럼, 음

악과 잘 만들어진 소설 한 권을 자유롭게 즐긴다면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멋진 환상 속으로 도피할 수도 있지 않

을까요.

그 어떤 눅눅한 감정도 녹일 것 같은 달콤한 냇 킹 콜 버전의

‘It’s only paper moon’과 함께, 비단 독서가 아니더라도 즐거

운 상상이 가능한 경험을 즐겨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우리 모

두 오늘만큼은 현실을 열심히 살기보다는 나의 즐거운 상상

속의 삶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202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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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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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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