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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재봉틀 수리의 명장을 소개합니다

2020-11-24

 

우리 동네, 재봉틀 수리의 명장을 소개합니다
글 이경희 사진 김희진
금성미싱 | 김경성 대표

 

‘금성미싱’이 하남시 덕풍동에 처음 자리 잡은 건 1990년 4월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득하게 이 자리를 지켜온 김경성 대표는

재봉틀 수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국구 명성을 얻고 있는 기술 장인이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기술인으로서의 자부심으로 하남시를 빛내고 있는 그를 만나 보았다.

 

 

Q ‘금성미싱’을 소개해주세요.
1990년 4월에 처음 ‘금성미싱’을 열었습니다.

소파 공장, 의류 공장 등에서 사용되는 공업용 재봉틀을 주로 취급하고 있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재봉틀 가게에 운전기사로 들어갔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는데 의류, 봉제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고 재봉틀도 없어서 못 팔았던 시기였어요.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보니까 재봉틀 수리를 배워 놓으면 평생 나만의 직업이 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선배들 어깨 너머로 눈치껏 고생하면서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11년을 그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지금 이곳에 오게 된 거죠.

 

Q 하남시에는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셨나요?
서울에서 일할 때 이 지역으로 출장을 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인이 하남시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이라면서 이곳에 들어오라고 추천을 하시더라고요.

자본도 없이 오직 기술 하나 믿고 덕풍동에 가게를 열었습니다.

당시 하남시는 개발 전이라 대형 구두 공장을 비롯해 봉제 공장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한창 때 제 거래처가 500~600군데였는데, 직접 출장을 다니면서 5000가지가 넘는 종류의 재봉틀을 고쳤죠.


Q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신용과 신뢰입니다. ‘내가 고친 기계는 내가 책임을 진다!’는 거죠.

지금도 광주, 마석가구단지를 비롯 지방에서 화물로 재봉틀이 많이 올라옵니다.

사장님들이 제 얼굴도 모른 채 믿고 보내는 거예요. 재봉틀 수리는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종류도 너무 많고 제대로 수리가 안 되면 실은 끊어지고 바느질도 예쁘게 되지 않아요.

성격상 기계를 못 고치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잠을 못 자요.

다 뜯어서라도 완벽하게 수리해서 보냅니다.

재봉틀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계속 발전해 왔는데,

저 역시 그에 맞춰 지금까지도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봉제산업에 아쉬운 점이 많으실 듯합니다
하남시만 해도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관련 공장들이 전부 지방으로 이전을 해갔습니다.

또 재봉 인력을 구하지 못한 많은 공장들의 기계들이 놀고 있어요.

타 지역에 봉제 인력양성소가 있어요.

우리 지역에서도 경력이 단절된 여성분들이나 남성분들이 봉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하남시 경제가 조금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기술 전수자를 찾아 제가 수십 년 갈고 닦은 노하우를 전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중국 등에서 기술자를 초빙할 수밖에 없어요.

기술의 맥이 끊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Q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하남시 덕분에 제가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덕풍2동체육회 회장직을 맡아 체육대회 참가,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활동하면서

지역민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또 재봉틀 수리 전문 기술자로서 건강하게 오래 일하면서 봉제 산업 분야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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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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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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