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별보기
슬프고 아름다웠던 기억을 되새겨보는
클래식&재즈 이야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일로 슬프기도 했고, 반면 기뻤던 일도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한 경험과 기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차가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드는 계절,
음악을 들으며 지난날의 슬픔과 아름다웠던 순간을 되짚어 보는 건 어떨까.
구스타프 말러는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입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스스로 얘기
했었는데, 지금은 정말 ‘말러의 시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죠. ‘말러리안’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말러
의 음악을 애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의 음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역시 5번 교향곡 4악장, 아
다지에토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비롯해, 고전 영화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수록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죠.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하는 이 4악장은, 조용하면서도 아름다
운 멜로디로 시작해 찬란하게 빛나는 선율로 이어집니다. 마치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아름다움만 존재하는 세상에 온 느
낌이라고 할까요. 음악이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 것만도 같았습니다.
5번 교향곡 4악장은 말러가 사랑하는 알마(나중에 결혼까지 하
게 됩니다)에게 이 곡의 악보를 보냈고, 이 음악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알마가 사랑을 받아주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음악
과 이야기를 들은 친구 연주가가 악보에 “나의 태양, 내가 당신
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라고 소감을 적었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고 해도 무방하
겠죠. 이토록이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선율은
마지막 부분에 말러의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히고’를 인용해 조
용히 가라앉는 듯한 느낌으로 마무리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가지고 과거에는 ‘아름다운 것’이었으나 결
국에는 사라져가는 감정에 대한 깊은 슬픔을 표현한 것이 아니
냐는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요. 저 또한 이런 생각에 동의합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시면 마무리 부분에 이 음악이 삽입됩
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음악을 다 듣고 나면 마
치 <헤어질 결심>을 한 번 더 본 느낌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다양한 감정들 그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서서히 잊어야 하는 것에 대한 슬픔. 아마도 말러의 아다지에토
는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슬픔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12월, 말러의 5번 교향곡 4악장을 들으며, 이 계절에 느낄 수 있
는 가장 깊고 슬픈 감성을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 음악을 들으
신 후 영화 <헤어질 결심>을 한 번 더 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잠
시 혹은 아주 오랫동안 헤어졌으나, 마음에 담아두었던 ‘아름다
운 것’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가을과 겨울에 가장 많이 듣는 앨범은, 클라우
드 윌리엄슨 트리오의 앨범 ‘South Of The Border West Of
The Sun’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
의 서쪽」에 나온 음악을 연주한 앨범이지요. 다양한 매체에서
뽑는 ‘재즈 100대 명반’에 다수 수록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
니다.
클라우드 윌리엄슨이 작곡한 ‘West of the Sun’을 제외하고
는 재즈 스탠더드 곡을 재해석했는데요, ‘Pretendo’, ‘As time
goes by’ 등 너무 좋은 음악이 많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
악은 ‘Star Crossed Lover’입니다. 이 곡은 듀크 엘링턴이라는
재즈 뮤지션이 작곡했는데요, 듀크 엘링턴이 만든 다른 재즈
스탠더드 곡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기를 많이 끌지는 못했습니
다. 하지만 동명의 소설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가
장 의미 있는 곡으로 소개되었고, 소설 속 이야기와 어우러지
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멜로디를 깊게 공감하다 보니, 앨범
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이 되었지요.
‘Star Crossed Lover’는 1957년 온타리오에서 열린 ‘셰익스피
어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기 위해 듀크 앨링턴과 빌리 스트레
이혼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중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이
야기를 표현하고자 했는데요, 곡 제목의 뜻 또한 ‘엇갈린 운명
을 타고난 연인들, 불운한 연인들’이라고 합니다(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설명을 인용했습니다).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또한 음악처럼 엇갈린 운명
을 타고난 연인의 이야기가 주요 내용입니다. 어릴 때 만난
소중한 인연이었지만, 삶을 지내면서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
된 관계와 그 가운데 남은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이야기의 정당성 등과는 별개로, 우리 모두에게는 엇갈린 인
연과 운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남녀관계가 될 수도 있고, 친구
관계가 될 수도 있으며, 다양한 다른 인간관계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저 지나간 시간과 뒤틀린 운명을 아쉬워하며, 기억과 추억을
잠시나마 새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겁니다. 소설의 내용처럼 ‘Star Crossed Lover’를 들으며, 엇
갈리기 전의 시간과 모습들을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이처럼 기억을 돌이키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
에게 더 나은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재즈 뮤지션 빌
에반스의 “힘든 일을 통해 발전이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내면
의 자아 성찰을 통해서요”라는 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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